오늘의 주제 시
[1일 1시] Day 280 < 사라진 유산 by 박신규>
사라진 유산
박신규
여름에 이르는 길목은 향기로웠다
밤물결 근육이 진초록으로 단단해지면
은어가 길을 잃지 않도록
여뀌꽃들 한층 더 붉어진 얼굴로
바짝 물가에 붙어 마중하고
은하수는 한껏 부풀어 터지는 젖을
요천수에 흘려보냈다
지칠 새 없이 세찰수록 은어떼 냄새는
강둑을 타넘어 마당 지나
방문을 밀고 덮쳤다
수박향이 난다고들 했지만
어린 내게는 그 아이 냄새였다
웃고 울어 살구꽃 피고 지게 하던
잿말 가시내는 내 꿈속까지 훔쳤다
뜨겁게 파닥거리다 서늘하게 젖어 깨면
강물 속 반딧불은 더 맑게 흐르고
은어들은 더 진하게 익어 오르고 있었다
절로 부끄러워 뒤안으로 들면
장독대에 살구떼가 쏟아져내렸다
노랗게 으깨져 서운했다가
시고 서러워지는 밤이었다
살구.... 으깨진 것을 어릴 땐 봤는데...
시간이 지나가면서 나아지는 모습도 있지만, 어느덧 너무 옛날 경험으로 남은 것들, 순간들, 사건들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습니다. 그런 사람까지 많아지지 않길 바라게 되는 그런 밤이 서러운 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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