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늘의 주제 시 심보선 시인의 <연보>입니다.
시에 인상 깊은 부분이, 이미지로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왜 이 시의 제목이 연보인지, 시인은 왜 연보가 더 좋은지...
연보(年譜)
심보선
나는 소설책보다는 시집이 더 좋아
나는 시보다는 작가 연보가 더 좋아
나는 언제나 무덤에 가까운 쪽에 매혹되니까
물고기들은 죽으면 심해로 가라앉아
서로의 죽음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되니 좋아
물고기 뼈가 물고기 연보의 끝이야
나는 상념의 심해로 빠져들어
내 주먹은 심해 문어의 대가리처럼 부풀다 터져버려
핏물 대신 먹물을 뿜고
그러나 어떤 먹물로도
세계를 암흑시대로 되돌릴 순 없어
상념의 원환은 끝이 없어
아무도 나를 붙잡을 순 없어
우주 전체가 나의 옷깃이야
아무도 나를 비웃을 수 없어
나의 연보는 수십억 광년이야
영원으로부터 질주해오고 있어
아직 지구에 없는 내 초라한 무덤을 향해
아직 내 무덤이 없는 찬란한 지구를 향해
저도 소설책보다는 시집이 더 좋습니다.
'개발 외의 이야기 > 시 필사' 카테고리의 다른 글
[1일1시] Day 329 < 돌려줘 by 최대호> (0) | 2020.08.13 |
---|---|
[1일1시] Day 328 < 바다는 잘 있습니다 by 이병률> (0) | 2020.08.12 |
[1일1시] Day 326 < 서른 살 by 진은영> (0) | 2020.08.10 |
[1일1시] Day 325 < 화살기도 by 나태주> (0) | 2020.08.09 |
[1일1시] Day 324 < 벌레먹은 나뭇잎 by 이생진> (0) | 2020.08.08 |